예배 설교

日本語english中国語
도쿄 칼바리 교회 설교 가사마 료 목사 2024년 3월 31일
“부활의 때” 요한에 의한 복음서 20장 1절~10절

드디어 나, 카사마의 도쿄 칼바리 교회에서의 마지막 설교가 되었습니다. 이날 부활절 예배가 겹쳤습니다. 실은 내가 여기에 부임한 2017년의 첫 예배가 수난주의 예배였고, 둘째 주가 부활절이었습니다. 이 때는 마가의 복음서 15장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성서 개소, 2020년의 4월 12일의 예배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2020년의 부활절은 바로 코로나에 의한 긴급 사태 선언이 발령된 다음 주에 페이스북에서 첫 배달을 했을 때입니다. 회당 안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설교를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 의미에서도 추억 깊네요.
부활절 예배는 교회에게는 크리스마스 이상으로 중요한 예배입니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로 기뻐하지만, 탄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신 것이며, 이날 예수님이 죽음에서 되살아난 것으로, 교회가 세우는 의미가 만들어진 날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붙여진 것은 금요일 아침. 그 후 낮에는 십자가 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그 날에 매장됩니다.
당시 유대의 매장은 예루살렘 주변에 많이 있던 동굴을 시체 안치소로 이용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장례식이었습니다. 동굴에 받침대를 놓고 그 위에 시신을 누워 잠시 방치하여 완전히 뼈가 된 곳을 견디어 다시 매장이나 산골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매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신도 우선 동굴에 안치되었습니다. 다만, 시신을 조금이라도 그대로의 형태로 남기려고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체에 몰약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약이나 기름을 바르고 방부처리를 한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되어 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유족의 소원으로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상 무덤은 넣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밝은 일요일 아침에, 예수님을 모시는 막달라의 마리아라는 여성이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바르러 갔습니다. 한 마디에는 “주의 초 날, 아침 일찍, 아직 어두운 사이에, 마그다라의 마리아는 무덤에 갔다. 무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거기서 예수님의 시신이 들어 있는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이 걸려 있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때의 그녀는 안도 보지 않고 대황으로 돌아와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일을 고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대로 무덤에 들어갔을 경우, 무덤 도둑이나 예수님을 적시하는 사람이 매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2절에는 “그곳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또 예수님이 사랑하신 또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에게 말했다.” 또 다른 제자”라는 것은 이 복음 서기자 요한 자신입니다. 그 말을 받은 두 사람은 급히 무덤의 장소까지 가서 거기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10절에서 「그리고, 이 제자들은 집에 돌아갔다.」라고 있어, 그들은 그대로 돌아 버렸습니다. 다른 복음서처럼 천사가 나타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고하고 있는 곳은 없고, 단지 시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이 요한의 특징이군요. 이 시점에서는 아무리 기적적인 것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복음서에는 쓰여지지 않은 요한 복음서만으로 쓰여진 특징적인 말이 구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반드시 죽은 자 안에서 부활되게 되어 있다는 성경의 말씀을 두 사람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사태를 앞두고 제자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십자가의 죽음도 부활도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만은 듣고 있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생전 예수님은 제자들에 대해 반복해서 자신이 부활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거나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자가 소생한다는 것 자체가 일어날 리가 없기 때문에 제자들의 반응도 무리가 없는 곳은 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에 대한 생전의 예수님이 내가 말하는 것을 믿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제자들은 그 질문에 대답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싫다고 할 정도로 알게 된 것이 이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자들이 알게 된 것은 3점 있습니다.
제일점으로서,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며,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부활이라는 것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분으로 거짓말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도,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옳다. 믿음을 가진 자는 먼저 이 자리에 서야 한다.
제2점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은, 죽은 것이 되살아났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죽음을 넘는 것으로, 이제 죽음은 예수님께 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넘어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이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죽음. 그마저 넘어선 것으로, 예수님은 모두를 이기는 힘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에게는 넘을 수 없는 것을 넘어섰습니다. 이것에 의해 모든 것 위에 세워지는 존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3점.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생명을 주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구원이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넘은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 죽지 않는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이 됩니다.
제자들은 순간적으로 이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며, 앞으로 오랜 시간을 사용하여 배우게 됩니다만, 여기에서는 분명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일로, 드디어 처음 이해의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우리도 같은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항상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시작 때와 지금은 여러분도 이해도가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다양한 경험이나 이해를 거쳐 몸에 대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중심은 제자들과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아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부분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부활절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행보를 시작합니다, 이 도쿄 칼바리 교회 위에 하나님으로부터의 큰 은혜와 힘을 기원하고 설교를 끝내 주십니다.
이 페이지는 google 번역에서 일본어로 번역 한 것입니다.
トップページ
 

電話でのお問い合わせはTEL.03-3894-7565

〒116-0002 東京都荒川区荒川5-47-4